네필 밀게에 이사무 님께서 쓰신 '구일본 최악의 전함 후소' 로 인해 현재 후소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설계의, 형편없는 퇴물함' 정도로 보입니다. 이 글에서는 비판의 주대상이 되고 있는 연장 6기의 함포 배치의 장단점을 분석한 후 후소에 대해 평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후소의 건조 시기입니다. 후소의 건조가 시작된 것은 1912년 3월으로 비슷한 시기 타국의 건함 동향을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 해군에서는 최초의 초노급 전함인 오라이언 급(22200톤, 13.5인치 연장 5기)이 그해 1월부터 취역하기 시작했고, 킹조지 V세 급(23000톤, 무장 동일)이 건조 중, 그리고 12년 1월부터 아이언 듀크 급(25000톤, 무장 동일)이 건조되기 시작했고, 12년 10월부터는 퀸엘리자베스 급(27500톤, 15인치 연장 4기)이 건조되기 시작했습니다.(이외에 순양전함과 수출을 위해 건조되던 함정이 있지만 생략) 미국 해군의 경우 12년 9월에 와이오밍 급(26000톤, 12인치 연장 6기)이 취역했고, 11년 9월부터 뉴욕 급(27000톤, 14인치 연장 5기)이 건조되기 시작했으며 12년 11월부터 네바다 급(27500톤, 14인치 연장 2기, 3연장 2기)이 건조되기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즉 후소가 계획되던 당시는 13.5~14인치 연장 5기를 장비한 전함들이 한참 건조 중인 상태로, 각국은 차세대 전함을 어떤 형태로 건조해야 할지에 대해 암중모색을 거듭하던 시기였습니다. 결국 영국은 15인치 주포를 채택한 퀸엘리자베스 급을, 미국은 3연장 포탑을 장비한 네바다 급을, 일본은 연장 6기를 탑재한 후소를 건조하게 된 것입니다.
이 연장 포탑 6기 탑재를 단순히 구식에 비효율적 설계의 결과로만 치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후소가 채택한 연장 포탑과 비교해 보았을때, 미국이 선택한 3연장 포탑의 장단점을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분명한 장점이자 미국이 3연장 포탑을 채택하게 된 주된 이유로 방어 구역이 줄어든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3연장 포탑을 채택할 경우 소수의 포탑으로 같은 화력을 확보할 수 있기에, 줄어든 포탑만큼 방어 구역이 축소되고, 이는 동일한 중량의 장갑으로 보다 철저한 방어를 가능케 합니다.(혹은 같은 수준의 방어력을 더 가벼운 장갑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장점은 포 한문당 중량이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즉 연장 포탑 중량을 2로 나누는 것보다 3연장 포탑의 중량을 3으로 나누는 것이 더 가볍다는 것이죠. 이는 특히 배수량에 민감했던 조약기 전함들이 3연장이나 심지어 4연장 포탑을 채택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3연장 포탑에는 단점도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조적으로 복잡해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좌우대칭형으로 제작하면 되는 연장 포탑과는 달리, 좁은 공간에 3문의 포를 우겨 넣으려면 그 구조가 당연히 복잡해 질 수 밖에 없고,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그만한 설계 능력이 필요합니다. (잦은 고장으로 악명높았던 KGV의 4연장 포탑을 생각해 보시길)
더구나 3연장 포탑을 채택해 포탑 수가 줄어들면 피탄시나 고장시 화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두터운 장갑으로 보호되어 있는 포탑이지만, 수백KG의 포탄이 충돌했을때의 충격만으로도 포탑이 고장날 때가 있습니다.(카사블랑카 상륙 당시 메사추세츠의 16인치 포탄에 명중당하고 포탑이 고장난 장 바르나 최후의 전투 당시 로드니의 16인치 포탄 한발에 A,B 포탑이 한번에 고장나버린 비스마르크의 예를 생각해 보시길) 더구나 외부적 요인 없이도 고장이 날 때도 있는데, 이런 경우 간단히 화력의 25-30%를 상실한다는 점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1912년 당시 기술적으로 완성된 3연장 포탑을 확보한 국가는 이태리 뿐이었고, 그나마도 이를 탑재한 전함은 이태리,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에서 한참 건조중인 상태였습니다. 즉 미국은 백지 상태에서 기술적 위험성이 큰 3연장 포탑을 설계와 동시에 건조를 진행한다는 도박에 나섰던 셈입니다. 혹 3연장 포탑의 개발에 실패한다면 네바다 급은 졸지에 14인치 연장 포탑 4기만을 탑재한, 화력 부족의 애물 단지가 될 수도 있었죠.(퀸 엘리자베스 급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해 15인치포 개발에 실패할 경우 13.5인치 연장 포탑 4기만을 탑재한 솜주먹 전함이 탄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윈스턴 처칠의 도박은 성공을 거두었지요)
실제 3연장 포탑의 개발에 성공하긴 했지만, 1910년대 개발된 미국의 3연장 포탑은 여러가지 결점을 보여주었습니다. 공간 절약을 위해 하나의 포가에 3문의 포를 설치했기 때문에 포신 각각의 부양각 조절이 불가능하고 일체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포탑은 한번에 일제 사격을 해야만 했고(흔히 보이는 한번에 반씩 사격하는 Half salvo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동시 장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장전 동력에 부담이 가는 문제, 발사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 포간 간격이 좁기에 발사한 포탄끼리 상호 간섭을 일으켜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 등이 발생했던 것이죠.
여기에 비하면 후소의 연장 포탑은 기술적 위험이 없는, '검증된'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일본은 전함에게도 일정 수준의 고속 성능을 요구했기에 - 22.5노트의 최고 속도는 타국 전함들보다 1.5-2노트 빠른 것이었습니다 - 긴 선체는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짧은 선체는 기관을 설치할 공간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파도를 헤치고 나갈때의 저항이 커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1915년 11월 완성 당시, 후소는 세계 최대의 거함인 동시에 최고 수준의 화력, 일류의 방어력, 빠른 속도를 겸비한 대단히 우수한 함정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QE급은 관통력에서 앞서는 15인치 함포를 장비했지만, 8문을 탑재하는데 그쳐 투사중량은 후소의 86%선에 그쳤고, 미국의 네바다 급은 14인치 10문을 탑재해서 16년 6월 취역한 펜실베니아 급에 이르러서야 3연장 포탑 4기 탑재로 비로소 14인치 12문을 탑재하게 되었습니다.(이 경우에도 투사 중량은 후소가 앞서지만) 방어력은 QE의 13인치, 세계 최초로 집중방어를 채택한 네바다의 13.5인치에 못미치지만, 이들 직전에 건조된 아이언 듀크, 뉴욕 급과는 동일한 12인치의 현측 장갑을 장비했고, 속도 면에서도 QE의 23-23.5노트에 비해 22.5노트를 발휘, 20.5노트의 네바다 급이나 21노트의 펜실베니아 급보다 한수 위의 기동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취역 당시에는 세계 일류 수준의 전함이었던 후소도 분명 2차대전 당시에는 '구형 전함'의 한척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후소의 위치가 과연 '구제불능'의 위치였나는 의문이 있습니다. 어차피 설계시부터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참고한 함정은 워싱턴 조약 체결 이전의 함정 중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 네바다급 이후의 미군 전함들은 설계시부터 장거리 포격전에 대비한 집중방어를 채택해서 이 점에서는 약간 앞서 있었지만 - 설계가 구식임은 타국의 구형 전함들과도 별반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후소는 일본의 다른 전함들처럼 보일러 개장시 출력도 증가시켜 두드러지게 속도가 향상되는 등 - 24.5-25노트. 타국의 전함들이 개장을 실시하며 속도를 유지하는데 그치거나 오히려 떨어졌던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 - 여전히 일선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대전 중 훈련함으로 전용된 것은 2개월 남짓에 불과했고, 둘리틀 부대 추격전, 미드웨이 해전, 남방으로의 선단 호위, 그 외 현지에서 다수의 작전에 참가하는 등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구체적인 활동 내역은 http://www.combinedfleet.com/Fuso.html 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정말로 일본 해군이 소모 가능한 자원으로 간주했던 것은 공고 급으로, 이들이 30년대 들어 2차 개장을 통해 30노트의 고속 성능을 확보한 것도 점감작전에서 결전 전야 순양함 부대의 뇌격시 화력 지원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후소는 다른 전함들과 함께 최종 결전시 전함열에서 전투를 수행 할 예정으로, 함대 결전에 대비한 주력으로 간주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봤을때, 후소는 '아끼다 x된' 다른 일본 전함들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전 내내 함대 결전을 기다리며 전장 근처만 맴돌다 전쟁 말기 압도적 열세 속에서 격침되는 것은 비단 후소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일본 전함들도 마찬가지니 말입니다. 외국 포럼에서도 '가장 못생긴 전함'으로 손꼽히는 후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친 푸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아쉽군요.
덤 : 아마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왜 탄약고 유폭 이야기가 없지'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제가 읽은 서적이나 포럼의 글들 중 다포탑의 문제로 '유폭 가능성이 높다'를 지적한 글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같은 숫자의 포탄을 한데 몰아 탑재하나(3연장) 몇군데로 분리해서 탑재하나(연장) 어차피 총 탑재되는 포탄 숫자는 똑같은 이상 명중 확률도 비슷할 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 합니다. 양자 모두 중장갑을 한 탄약고를 장비한 이상 말입니다.
오히려 이상하게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유폭 공포증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포탄 유폭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군요. 게시판에서 오가는 이야기만 들어 보면 격침된 배의 2/3는 유폭으로 격침된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_-;
덤2 : 수리가오 해협의 전투는 말 그대로 혼전의 연속이었기에 초전에 격침된 전함이 후소였는지, 야마시로였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미해군 공간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적은 후소가 먼저 격침되었다고 기록하지만, Anatomy of the Ship 시리즈의 후소편을 쓴 Janusz Skulski를 비롯한 일부 서적들은 야마시로가 먼저 격침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정수의 '제2차세계대전 해전사'에서도 이 주장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다룬 글로 http://www.combinedfleet.com/atully06.htm 이 있습니다. 길지만 재미있는 내용도 많으니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예를 들어 폭발로 인해 반동강이 난 선체가 두시간이나 떠 있었고, 여기에 선미가 가라앉기까지는 한시간이 더 걸렸다는 이야기는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덤3 : 일본 해군 특유의 파고다 마스트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가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http://www.bobhenneman.info/pagoda.htm 는 가장 유명(?)한 후소의 마스트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 관심있으신 분은 Anatomy of the Ship 시리즈의 후소편을 사 보시면 되겠지요.
[참고자료]
Battleship Design and Development 1905-1945, Norman Friedman, Mayflower Books
US Battleships An Ilustrated Design History, Norman Friedman, Naval Institute Press
http://www.combinedfleet.com/
[2007. 9. 4.]
이사무 님께서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하셔서 후소에 대해 재평가한 글은 이사무 님 홈피의 '구일본의 전함 후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본문 읽기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후소의 건조 시기입니다. 후소의 건조가 시작된 것은 1912년 3월으로 비슷한 시기 타국의 건함 동향을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국 해군에서는 최초의 초노급 전함인 오라이언 급(22200톤, 13.5인치 연장 5기)이 그해 1월부터 취역하기 시작했고, 킹조지 V세 급(23000톤, 무장 동일)이 건조 중, 그리고 12년 1월부터 아이언 듀크 급(25000톤, 무장 동일)이 건조되기 시작했고, 12년 10월부터는 퀸엘리자베스 급(27500톤, 15인치 연장 4기)이 건조되기 시작했습니다.(이외에 순양전함과 수출을 위해 건조되던 함정이 있지만 생략) 미국 해군의 경우 12년 9월에 와이오밍 급(26000톤, 12인치 연장 6기)이 취역했고, 11년 9월부터 뉴욕 급(27000톤, 14인치 연장 5기)이 건조되기 시작했으며 12년 11월부터 네바다 급(27500톤, 14인치 연장 2기, 3연장 2기)이 건조되기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즉 후소가 계획되던 당시는 13.5~14인치 연장 5기를 장비한 전함들이 한참 건조 중인 상태로, 각국은 차세대 전함을 어떤 형태로 건조해야 할지에 대해 암중모색을 거듭하던 시기였습니다. 결국 영국은 15인치 주포를 채택한 퀸엘리자베스 급을, 미국은 3연장 포탑을 장비한 네바다 급을, 일본은 연장 6기를 탑재한 후소를 건조하게 된 것입니다.
이 연장 포탑 6기 탑재를 단순히 구식에 비효율적 설계의 결과로만 치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후소가 채택한 연장 포탑과 비교해 보았을때, 미국이 선택한 3연장 포탑의 장단점을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분명한 장점이자 미국이 3연장 포탑을 채택하게 된 주된 이유로 방어 구역이 줄어든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3연장 포탑을 채택할 경우 소수의 포탑으로 같은 화력을 확보할 수 있기에, 줄어든 포탑만큼 방어 구역이 축소되고, 이는 동일한 중량의 장갑으로 보다 철저한 방어를 가능케 합니다.(혹은 같은 수준의 방어력을 더 가벼운 장갑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장점은 포 한문당 중량이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즉 연장 포탑 중량을 2로 나누는 것보다 3연장 포탑의 중량을 3으로 나누는 것이 더 가볍다는 것이죠. 이는 특히 배수량에 민감했던 조약기 전함들이 3연장이나 심지어 4연장 포탑을 채택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3연장 포탑에는 단점도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조적으로 복잡해진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좌우대칭형으로 제작하면 되는 연장 포탑과는 달리, 좁은 공간에 3문의 포를 우겨 넣으려면 그 구조가 당연히 복잡해 질 수 밖에 없고, 신뢰성을 확보하려면 그만한 설계 능력이 필요합니다. (잦은 고장으로 악명높았던 KGV의 4연장 포탑을 생각해 보시길)
더구나 3연장 포탑을 채택해 포탑 수가 줄어들면 피탄시나 고장시 화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두터운 장갑으로 보호되어 있는 포탑이지만, 수백KG의 포탄이 충돌했을때의 충격만으로도 포탑이 고장날 때가 있습니다.(카사블랑카 상륙 당시 메사추세츠의 16인치 포탄에 명중당하고 포탑이 고장난 장 바르나 최후의 전투 당시 로드니의 16인치 포탄 한발에 A,B 포탑이 한번에 고장나버린 비스마르크의 예를 생각해 보시길) 더구나 외부적 요인 없이도 고장이 날 때도 있는데, 이런 경우 간단히 화력의 25-30%를 상실한다는 점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1912년 당시 기술적으로 완성된 3연장 포탑을 확보한 국가는 이태리 뿐이었고, 그나마도 이를 탑재한 전함은 이태리,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에서 한참 건조중인 상태였습니다. 즉 미국은 백지 상태에서 기술적 위험성이 큰 3연장 포탑을 설계와 동시에 건조를 진행한다는 도박에 나섰던 셈입니다. 혹 3연장 포탑의 개발에 실패한다면 네바다 급은 졸지에 14인치 연장 포탑 4기만을 탑재한, 화력 부족의 애물 단지가 될 수도 있었죠.(퀸 엘리자베스 급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해 15인치포 개발에 실패할 경우 13.5인치 연장 포탑 4기만을 탑재한 솜주먹 전함이 탄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윈스턴 처칠의 도박은 성공을 거두었지요)
실제 3연장 포탑의 개발에 성공하긴 했지만, 1910년대 개발된 미국의 3연장 포탑은 여러가지 결점을 보여주었습니다. 공간 절약을 위해 하나의 포가에 3문의 포를 설치했기 때문에 포신 각각의 부양각 조절이 불가능하고 일체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포탑은 한번에 일제 사격을 해야만 했고(흔히 보이는 한번에 반씩 사격하는 Half salvo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동시 장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장전 동력에 부담이 가는 문제, 발사 속도가 느려지는 문제, 포간 간격이 좁기에 발사한 포탄끼리 상호 간섭을 일으켜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 등이 발생했던 것이죠.
여기에 비하면 후소의 연장 포탑은 기술적 위험이 없는, '검증된'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일본은 전함에게도 일정 수준의 고속 성능을 요구했기에 - 22.5노트의 최고 속도는 타국 전함들보다 1.5-2노트 빠른 것이었습니다 - 긴 선체는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짧은 선체는 기관을 설치할 공간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파도를 헤치고 나갈때의 저항이 커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1915년 11월 완성 당시, 후소는 세계 최대의 거함인 동시에 최고 수준의 화력, 일류의 방어력, 빠른 속도를 겸비한 대단히 우수한 함정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QE급은 관통력에서 앞서는 15인치 함포를 장비했지만, 8문을 탑재하는데 그쳐 투사중량은 후소의 86%선에 그쳤고, 미국의 네바다 급은 14인치 10문을 탑재해서 16년 6월 취역한 펜실베니아 급에 이르러서야 3연장 포탑 4기 탑재로 비로소 14인치 12문을 탑재하게 되었습니다.(이 경우에도 투사 중량은 후소가 앞서지만) 방어력은 QE의 13인치, 세계 최초로 집중방어를 채택한 네바다의 13.5인치에 못미치지만, 이들 직전에 건조된 아이언 듀크, 뉴욕 급과는 동일한 12인치의 현측 장갑을 장비했고, 속도 면에서도 QE의 23-23.5노트에 비해 22.5노트를 발휘, 20.5노트의 네바다 급이나 21노트의 펜실베니아 급보다 한수 위의 기동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취역 당시에는 세계 일류 수준의 전함이었던 후소도 분명 2차대전 당시에는 '구형 전함'의 한척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후소의 위치가 과연 '구제불능'의 위치였나는 의문이 있습니다. 어차피 설계시부터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참고한 함정은 워싱턴 조약 체결 이전의 함정 중에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 네바다급 이후의 미군 전함들은 설계시부터 장거리 포격전에 대비한 집중방어를 채택해서 이 점에서는 약간 앞서 있었지만 - 설계가 구식임은 타국의 구형 전함들과도 별반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후소는 일본의 다른 전함들처럼 보일러 개장시 출력도 증가시켜 두드러지게 속도가 향상되는 등 - 24.5-25노트. 타국의 전함들이 개장을 실시하며 속도를 유지하는데 그치거나 오히려 떨어졌던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 - 여전히 일선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대전 중 훈련함으로 전용된 것은 2개월 남짓에 불과했고, 둘리틀 부대 추격전, 미드웨이 해전, 남방으로의 선단 호위, 그 외 현지에서 다수의 작전에 참가하는 등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구체적인 활동 내역은 http://www.combinedfleet.com/Fuso.html 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정말로 일본 해군이 소모 가능한 자원으로 간주했던 것은 공고 급으로, 이들이 30년대 들어 2차 개장을 통해 30노트의 고속 성능을 확보한 것도 점감작전에서 결전 전야 순양함 부대의 뇌격시 화력 지원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후소는 다른 전함들과 함께 최종 결전시 전함열에서 전투를 수행 할 예정으로, 함대 결전에 대비한 주력으로 간주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봤을때, 후소는 '아끼다 x된' 다른 일본 전함들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전 내내 함대 결전을 기다리며 전장 근처만 맴돌다 전쟁 말기 압도적 열세 속에서 격침되는 것은 비단 후소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일본 전함들도 마찬가지니 말입니다. 외국 포럼에서도 '가장 못생긴 전함'으로 손꼽히는 후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친 푸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아쉽군요.
덤 : 아마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왜 탄약고 유폭 이야기가 없지'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제가 읽은 서적이나 포럼의 글들 중 다포탑의 문제로 '유폭 가능성이 높다'를 지적한 글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같은 숫자의 포탄을 한데 몰아 탑재하나(3연장) 몇군데로 분리해서 탑재하나(연장) 어차피 총 탑재되는 포탄 숫자는 똑같은 이상 명중 확률도 비슷할 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 합니다. 양자 모두 중장갑을 한 탄약고를 장비한 이상 말입니다.
오히려 이상하게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유폭 공포증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포탄 유폭을 의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군요. 게시판에서 오가는 이야기만 들어 보면 격침된 배의 2/3는 유폭으로 격침된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_-;
덤2 : 수리가오 해협의 전투는 말 그대로 혼전의 연속이었기에 초전에 격침된 전함이 후소였는지, 야마시로였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미해군 공간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서적은 후소가 먼저 격침되었다고 기록하지만, Anatomy of the Ship 시리즈의 후소편을 쓴 Janusz Skulski를 비롯한 일부 서적들은 야마시로가 먼저 격침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정수의 '제2차세계대전 해전사'에서도 이 주장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다룬 글로 http://www.combinedfleet.com/atully06.htm 이 있습니다. 길지만 재미있는 내용도 많으니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예를 들어 폭발로 인해 반동강이 난 선체가 두시간이나 떠 있었고, 여기에 선미가 가라앉기까지는 한시간이 더 걸렸다는 이야기는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덤3 : 일본 해군 특유의 파고다 마스트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가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http://www.bobhenneman.info/pagoda.htm 는 가장 유명(?)한 후소의 마스트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 관심있으신 분은 Anatomy of the Ship 시리즈의 후소편을 사 보시면 되겠지요.
[참고자료]
Battleship Design and Development 1905-1945, Norman Friedman, Mayflower Books
US Battleships An Ilustrated Design History, Norman Friedman, Naval Institute Press
http://www.combinedfleet.com/
[2007. 9. 4.]
이사무 님께서 이 글의 내용을 참고하셔서 후소에 대해 재평가한 글은 이사무 님 홈피의 '구일본의 전함 후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04/07/14 11:23
2004/07/1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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