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군의 순양전함 후드에 대한 국내의 인식은 취약한 장갑의 약체 내지는 순양전함의 취약성을 잘 보여준 실패작 정도에 불과합니다. '독일의 기술적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비스마르크의 명성을 드높여 주는 제물에 불과한 것이죠. 하지만 이런 인식은 후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나오는 피상적이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1. 후드의 건조 과정
후드의 건조 계획은 1915년 말, 새로운 전함 건조 예산을 승인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퀸 엘리자베스급의 단점을 보완한 고속전함이 고려되었지만, 1916년 초에는 순양전함 건조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당시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을 압도하는 전함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건조중 7척을 빼고 28척 : 건조중 4척을 빼고 17척) 순양전함의 보유량은 근소한 차이만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건조중 2척을 빼고 10척 : 건조중 6척을 빼고 6척) 더구나 6척의 12인치급 순양전함은 독일의 순양전함들(특히 신형 함정들)(#1)에 비해 속도, 화력, 방어력 모든 면에서 열세인데다 건조 중인 2척의 리나운 급 순양전함도 속도와 화력은 뛰어나지만 방어력의 부족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대형함의 신규 건조는 자연 순양전함에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16년 5월 31일, 후드의 건조가 시작될때의 당초 설계는 15인치포 8문을 탑재하고 측면 장갑은 최대 8인치, 최고속도 32노트에 배수량은 36250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에서 순양전함 3척이 폭발, 침몰하면서 후드의 설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해전 직후 순양전함의 폭침 원인으로 빈약한 장갑방어가 지적되면서(#2) 장갑을 보다 강화한 설계안을 다시 고려하게 됩니다. 약간의 장갑을 추가한 순양전함 개선안과 배수량의 상당한 증가를 수반하는 고속전함안을 놓고 고민한 끝에 결국 고속전함안이 채택되게 됩니다.
이 고속전함안은 최초의 순양전함 설계에 비해 약 4000톤이 증가한 40600톤의 배수량으로 측면 장갑은 최대 12인치, 갑판 장갑도 추가된 대신 최대 속도는 31.5노트로 감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다시 약간의 방어 장갑을 추가해 배수량 41200톤의 설계안이 선택되었고, 이후 건조가 진행되면서도 수차례에 걸쳐 방어 장갑이 추가되면서(주로 주요 부분의 장갑과 갑판 장갑 중심으로) 1920년 취역 당시에는 최종적으로는 42670톤까지 배수량이 증가했습니다.(#3)
2. 후드의 방어력
건조 과정에서 본 것처럼, 후드는 당초 순양전함으로 계획되었지만, 건조가 시작된 직후(사실상 시작되기 직전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유틀란트 해전의 영향으로 '고속전함'안을 채택해 건조된 함정입니다. 따라서 이전의 6-9인치의 측면 장갑을 장비한 기존의 순양전함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12인치의 측면 장갑을 장비했는데, 이는 전함 수준으로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당시 각국 전함들의 측면 장갑 두께를 살펴보자면, 영국은 아이언 듀크급까지 12인치, 퀸 엘리자베스 급과 로열 소브린 급은 13인치. 미국은 집중방어를 최초로 실시한 네바다급 이후로는 13.5인치, 그 이전의 함정들은 11-12인치. 독일은 초기의 300mm(12인치 상당)에서 후기에는 350mm(13.5인치 상당)까지. 일본은 후소에서 나가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12인치 장갑을 장비했습니다.
이처럼 두께 면에서 동등 내지는 신형함들에 비하면 1인치 정도의 열세를 보이는 후드는 경사 장갑을 채택해 열세를 만회하고 있습니다. 당시까지 전함들은 모두 장갑을 수직으로 장비했기에 12인치 경사장갑을 장비한 후드의 실제 방어력은 단순한 장갑 두께 이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후 2차대전 당시의 신전함들에서 경사장갑이 폭넓게 사용된 것을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선구적인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4)
갑판 방어의 경우, 수개 층의 갑판에 장갑이 분산되어 있는데다 부위별로 장갑의 두께도 천차만별으로 - 이는 집중방어 이전 시대의 장갑 배치에서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 일관성있는 평가는 쉽지 않지만, 주방어갑판만 3인치의 두께를 확보했기에 당시로서는 평균 이상의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후드의 방어력은 1차대전 당시의 기준으로는 우수한 편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 전함들은 이미 네바다 급부터 원거리 교전을 상정한 집중 방어를 채택했고, 후드 이후에 계획된 이른바 포스트 유틀란트형 전함들이 집중방어를 경쟁적으로 채택한 것에 비하면, 구식 설계로 건조된 마지막 세대의 함정이기에 가지는 한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1921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고 신규 주력함의 건조가 전면적으로 금지되면서 포스트 유틀란트형 전함들의 건조도 중지되었기에 구식 설계로 건조된 전함들 속에서 후드는 'Mighty Hood' 라는 이름을 날릴 수 있었습니다.
3. 후드와 아이오와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퀸 엘리자베스- 후드의 관계는 사우스 다코타 - 아이오와의 관계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아이오와의 경우 1936년 런던 조약의 단계적 확대 조항(#5)에 따라 45000톤 급의 전함을 건조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사우스 다코타 급의 화력/방어력 강화안 대신(이 안은 이후 몬타나 급으로 이어집니다) 동일한 화력, 동일한 방어력에 속도를 높인 고속 전함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설계 과정에서 16인치 50구경포의 중량 절감에 성공해서 화력이 약간 개선되었고, 방어력도 갑판 방어가 아주 약간 증가했지만, 강해진 화력에 비하면 오히려 자함 함포에 대한 방어력은 감소했습니다. 대신 기관 출력은 사우스 다코타의 130000 마력에서 1.5배 이상 증가한 212000 마력이 되었죠. 즉 1만톤의 중량 증가로 얻은건 약간의 화력 증가와 6노트의 속력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퀸 엘리자베스와 후드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수준의 화력, 방어력에 7노트의 속도 차이 때문에(비율로 따지면 아이오와와 사우스 다코다에 비해서 훨씬 큰 차이입니다. 당시에는 기관의 출력대 중량비가 낮아서 기관의 출력 증가는 큰 중량증가를 수반할 수 밖에 없었고요) 약 15000톤의 중량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죠.
4. 중량 배분으로 본 후드의 성격
후드의 성격은 함정의 중량 배분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전체 중량에서 무장, 장갑, 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을 %로 따져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표에서 나타난 것처럼 후드의 중량 배분은 타이거, 리나운 등 순양전함보다는 전함인 퀸 엘리자베스에 더욱 가깝습니다. 기관 중량은 후드를 제외한 영국의 순양전함들이 20%대에 달하는데 비해(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인빈시블. 인디파티거블, 라이온 모두 기관 중량이 20% 내외에 달합니다) 오히려 퀸 엘리자베스보다 낮은 12%대에 불과하고, 대신 장갑은 30%를 넘어 전함과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전함 수준의 장갑'이 중량 배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잘 볼 수 있죠. 반면에 타이거 급은 기존의 순양전함 중에는 가장 중장갑(측면 최대 9인치)을 실시한 함정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함에는 약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고, 전형적인 경장갑 순양전함인 리나운은 대단히 극단적인 장갑 중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결론
지금까지 본 것처럼, 후드는 'Mighty'라는 형용사가 부끄럽지 않은 강력한 군함이었습니다. 전함과 동일한 화력, 방어력에 덤으로 7노트의 속도까지 겸비한 후드는 최초의 '진정한 고속전함'이자, '1920년대의 아이오와'로 평할 수 있습니다.
비스마르크와의 대결에서 허무하게 격침되고 말았지만, 실상 워싱턴 조약 이전에 건조된 함정 중 비스마르크와 가장 호각세를 이룰만한 함정이 후드였습니다. 비록 미국의 16인치 탑재 콜로라도 급이 방어력/화력 면에서는 후드를 능가하지만, 21노트의 최대 속도로는 비스마르크가 교전을 회피한다면 교전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고속 전함들이 대거 등장한 2차대전의 전장에서 후드가 지니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일본의 전함군 중에서는 공고 급이 고속 성능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더욱 강한 방어력, 화력과 동등한 고속 성능을 지닌 후드가 '빈약한 장갑의 약체' 취급을 받는건 아이러니죠)
더구나 구식 전함군 중에서는 '가장 최신'이었기에 개전 이전에 개장 공사를 받지 못했다는 점은 정말 아쉬운 부분입니다.(아이러니컬 하게도 이는 미국의 콜로라도 급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분명 2차대전에 참전한 후드는 1차대전 당시에 설계된 함정으로 신전함과 비교하면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한계를 개장 공사로 어느 정도 극복했다면 어땠을까요? 기관을 보다 고효율의 신형으로 교체하고, 여기서 생기는 여유분의 중량을 장갑 개선에 투자했다면? 구식 개념에 입각한 측면 상부 갑판을 철거하고 이를 다른 부분으로 돌렸다면? 아마 비스마르크와 같은 신전함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강력한 전력이 될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아쉽게도 너무나도 허무한 격침으로 인해 'Mighty'가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이 비웃음에 가려진 후드의 실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울 뿐입니다.
#1
이 당시 독일에서 건조중이던 6척의 순양전함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데어플링어 급의 힌덴부르크 (1917년 10월 취역)
막켄젠 급 (13.4in 8문, 27.5kts) - 계획 7척, 건조 시작 5척, 진수 2척, 종전시까지 취역한 함정 없음.
#2
유틀란트 해전 직후에는 순양전함의 빈약한 방어장갑 - 특히 갑판장갑 - 이 원인으로 지적되었지만, 실제 원인은 장약 자체의 문제와, 안전 수칙을 따르지 않은 장약 취급 방법에 있었습니다.
#3
후드의 자매함 3척(Howe, Rodney, Anson)도 1916년 하반기에 건조가 시작되었지만, 1917년 초, 소형 함정들의 건조, 수리에 우선권이 부여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일단 완전한 설계안이 나온 후 건조가 재개될 예정이었지만, 1차대전의 종전으로 독일 순양전함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건조가 중단되게 됩니다.
#4
물론 예외도 있어서 영국의 신전함들은 수직 방어장갑을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형태와 의미는 1차대전 당시와는 판이하게 달라서, 좌우 경사나 침수에도 장갑의 하단부가 수선 위로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고, 대낙각의 포탄에 어뢰 방어 시스템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특히 선체 내부에 경사장갑을 설치한 프랑스의 전함들과 미국의 사우스 다코타, 아이오와에서 두드러지는 문제입니다) 영국은 이미 넬슨 급에서 경사장갑을 채택했지만, 이 문제를 깨닫고 다시 수직 장갑 - 대단히 두텁고 방어 면적도 넓은 - 을 채택했던 것입니다.
독일도 수직 방어장갑을 채택했지만, 이는 1차대전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사용한 것에 불과합니다.(약간의 개선은 있었지만)
#5
일본이 일정 시점까지 조약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주력함의 함포구경 제한을 14인치에서 16인치로 복원하고(노스 캐롤라이나 급이 이 조항으로 14인치로 설계가 시작되어서 16인치로 완성되었죠) 그 후엔 기준 배수량 제한 35000톤을 45000톤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입니다. 조약국이 일방적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죠.
[참고자료]
Battleship Design and Development 1905-1945, Norman Friedman, Mayflower Books
Battlecruisers, John Roberts, Naval Institut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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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드의 건조 과정
후드의 건조 계획은 1915년 말, 새로운 전함 건조 예산을 승인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퀸 엘리자베스급의 단점을 보완한 고속전함이 고려되었지만, 1916년 초에는 순양전함 건조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당시 영국 해군은 독일 해군을 압도하는 전함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건조중 7척을 빼고 28척 : 건조중 4척을 빼고 17척) 순양전함의 보유량은 근소한 차이만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건조중 2척을 빼고 10척 : 건조중 6척을 빼고 6척) 더구나 6척의 12인치급 순양전함은 독일의 순양전함들(특히 신형 함정들)(#1)에 비해 속도, 화력, 방어력 모든 면에서 열세인데다 건조 중인 2척의 리나운 급 순양전함도 속도와 화력은 뛰어나지만 방어력의 부족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대형함의 신규 건조는 자연 순양전함에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16년 5월 31일, 후드의 건조가 시작될때의 당초 설계는 15인치포 8문을 탑재하고 측면 장갑은 최대 8인치, 최고속도 32노트에 배수량은 36250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에서 순양전함 3척이 폭발, 침몰하면서 후드의 설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해전 직후 순양전함의 폭침 원인으로 빈약한 장갑방어가 지적되면서(#2) 장갑을 보다 강화한 설계안을 다시 고려하게 됩니다. 약간의 장갑을 추가한 순양전함 개선안과 배수량의 상당한 증가를 수반하는 고속전함안을 놓고 고민한 끝에 결국 고속전함안이 채택되게 됩니다.
이 고속전함안은 최초의 순양전함 설계에 비해 약 4000톤이 증가한 40600톤의 배수량으로 측면 장갑은 최대 12인치, 갑판 장갑도 추가된 대신 최대 속도는 31.5노트로 감소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다시 약간의 방어 장갑을 추가해 배수량 41200톤의 설계안이 선택되었고, 이후 건조가 진행되면서도 수차례에 걸쳐 방어 장갑이 추가되면서(주로 주요 부분의 장갑과 갑판 장갑 중심으로) 1920년 취역 당시에는 최종적으로는 42670톤까지 배수량이 증가했습니다.(#3)
2. 후드의 방어력
건조 과정에서 본 것처럼, 후드는 당초 순양전함으로 계획되었지만, 건조가 시작된 직후(사실상 시작되기 직전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유틀란트 해전의 영향으로 '고속전함'안을 채택해 건조된 함정입니다. 따라서 이전의 6-9인치의 측면 장갑을 장비한 기존의 순양전함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12인치의 측면 장갑을 장비했는데, 이는 전함 수준으로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당시 각국 전함들의 측면 장갑 두께를 살펴보자면, 영국은 아이언 듀크급까지 12인치, 퀸 엘리자베스 급과 로열 소브린 급은 13인치. 미국은 집중방어를 최초로 실시한 네바다급 이후로는 13.5인치, 그 이전의 함정들은 11-12인치. 독일은 초기의 300mm(12인치 상당)에서 후기에는 350mm(13.5인치 상당)까지. 일본은 후소에서 나가토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12인치 장갑을 장비했습니다.
이처럼 두께 면에서 동등 내지는 신형함들에 비하면 1인치 정도의 열세를 보이는 후드는 경사 장갑을 채택해 열세를 만회하고 있습니다. 당시까지 전함들은 모두 장갑을 수직으로 장비했기에 12인치 경사장갑을 장비한 후드의 실제 방어력은 단순한 장갑 두께 이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후 2차대전 당시의 신전함들에서 경사장갑이 폭넓게 사용된 것을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선구적인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4)
갑판 방어의 경우, 수개 층의 갑판에 장갑이 분산되어 있는데다 부위별로 장갑의 두께도 천차만별으로 - 이는 집중방어 이전 시대의 장갑 배치에서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 일관성있는 평가는 쉽지 않지만, 주방어갑판만 3인치의 두께를 확보했기에 당시로서는 평균 이상의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후드의 방어력은 1차대전 당시의 기준으로는 우수한 편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 전함들은 이미 네바다 급부터 원거리 교전을 상정한 집중 방어를 채택했고, 후드 이후에 계획된 이른바 포스트 유틀란트형 전함들이 집중방어를 경쟁적으로 채택한 것에 비하면, 구식 설계로 건조된 마지막 세대의 함정이기에 가지는 한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1921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고 신규 주력함의 건조가 전면적으로 금지되면서 포스트 유틀란트형 전함들의 건조도 중지되었기에 구식 설계로 건조된 전함들 속에서 후드는 'Mighty Hood' 라는 이름을 날릴 수 있었습니다.
3. 후드와 아이오와
| 함명 | 주포 | 장갑 | 속도 | 배수량 |
| 퀸 엘리자베스 | 15in 8문 | B:13in, D: 3in | 24kts | 27500t |
| 후드 | 15in 8문 | B:12in(경사), D:3in | 31kts | 42670t |
| 사우스 다코타 | 16in 9문(45구경) | B:12.2in(경사) D:5.75in | 27kts | 35000t(설계) |
| 아이오와 | 16in 9문(50구경) | B:12.2in(경사) D:6in | 33kts | 45000t(설계) |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퀸 엘리자베스- 후드의 관계는 사우스 다코타 - 아이오와의 관계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아이오와의 경우 1936년 런던 조약의 단계적 확대 조항(#5)에 따라 45000톤 급의 전함을 건조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사우스 다코타 급의 화력/방어력 강화안 대신(이 안은 이후 몬타나 급으로 이어집니다) 동일한 화력, 동일한 방어력에 속도를 높인 고속 전함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설계 과정에서 16인치 50구경포의 중량 절감에 성공해서 화력이 약간 개선되었고, 방어력도 갑판 방어가 아주 약간 증가했지만, 강해진 화력에 비하면 오히려 자함 함포에 대한 방어력은 감소했습니다. 대신 기관 출력은 사우스 다코타의 130000 마력에서 1.5배 이상 증가한 212000 마력이 되었죠. 즉 1만톤의 중량 증가로 얻은건 약간의 화력 증가와 6노트의 속력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퀸 엘리자베스와 후드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수준의 화력, 방어력에 7노트의 속도 차이 때문에(비율로 따지면 아이오와와 사우스 다코다에 비해서 훨씬 큰 차이입니다. 당시에는 기관의 출력대 중량비가 낮아서 기관의 출력 증가는 큰 중량증가를 수반할 수 밖에 없었고요) 약 15000톤의 중량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죠.
4. 중량 배분으로 본 후드의 성격
후드의 성격은 함정의 중량 배분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전체 중량에서 무장, 장갑, 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을 %로 따져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함명 | 장갑% | 기관% | 무장% | 총합% |
| 퀸 엘리자베스 | 31.3 | 14.4 | 16.5 | 62.2 |
| 후드 | 32.7 | 12.8 | 12.7 | 58.2 |
| 타이거 | 26.0 | 19.8 | 12.9 | 58.7 |
| 리나운 | 18.1 | 21.8 | 12.7 | 52.6 |
| 아이오와 | 32.6 | 8.5 | 10.5 | 51.6 |
표에서 나타난 것처럼 후드의 중량 배분은 타이거, 리나운 등 순양전함보다는 전함인 퀸 엘리자베스에 더욱 가깝습니다. 기관 중량은 후드를 제외한 영국의 순양전함들이 20%대에 달하는데 비해(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인빈시블. 인디파티거블, 라이온 모두 기관 중량이 20% 내외에 달합니다) 오히려 퀸 엘리자베스보다 낮은 12%대에 불과하고, 대신 장갑은 30%를 넘어 전함과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전함 수준의 장갑'이 중량 배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잘 볼 수 있죠. 반면에 타이거 급은 기존의 순양전함 중에는 가장 중장갑(측면 최대 9인치)을 실시한 함정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함에는 약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고, 전형적인 경장갑 순양전함인 리나운은 대단히 극단적인 장갑 중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결론
지금까지 본 것처럼, 후드는 'Mighty'라는 형용사가 부끄럽지 않은 강력한 군함이었습니다. 전함과 동일한 화력, 방어력에 덤으로 7노트의 속도까지 겸비한 후드는 최초의 '진정한 고속전함'이자, '1920년대의 아이오와'로 평할 수 있습니다.
비스마르크와의 대결에서 허무하게 격침되고 말았지만, 실상 워싱턴 조약 이전에 건조된 함정 중 비스마르크와 가장 호각세를 이룰만한 함정이 후드였습니다. 비록 미국의 16인치 탑재 콜로라도 급이 방어력/화력 면에서는 후드를 능가하지만, 21노트의 최대 속도로는 비스마르크가 교전을 회피한다면 교전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고속 전함들이 대거 등장한 2차대전의 전장에서 후드가 지니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일본의 전함군 중에서는 공고 급이 고속 성능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더욱 강한 방어력, 화력과 동등한 고속 성능을 지닌 후드가 '빈약한 장갑의 약체' 취급을 받는건 아이러니죠)
더구나 구식 전함군 중에서는 '가장 최신'이었기에 개전 이전에 개장 공사를 받지 못했다는 점은 정말 아쉬운 부분입니다.(아이러니컬 하게도 이는 미국의 콜로라도 급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분명 2차대전에 참전한 후드는 1차대전 당시에 설계된 함정으로 신전함과 비교하면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한계를 개장 공사로 어느 정도 극복했다면 어땠을까요? 기관을 보다 고효율의 신형으로 교체하고, 여기서 생기는 여유분의 중량을 장갑 개선에 투자했다면? 구식 개념에 입각한 측면 상부 갑판을 철거하고 이를 다른 부분으로 돌렸다면? 아마 비스마르크와 같은 신전함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강력한 전력이 될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아쉽게도 너무나도 허무한 격침으로 인해 'Mighty'가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이 비웃음에 가려진 후드의 실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아 아쉬울 뿐입니다.
#1
이 당시 독일에서 건조중이던 6척의 순양전함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데어플링어 급의 힌덴부르크 (1917년 10월 취역)
막켄젠 급 (13.4in 8문, 27.5kts) - 계획 7척, 건조 시작 5척, 진수 2척, 종전시까지 취역한 함정 없음.
#2
유틀란트 해전 직후에는 순양전함의 빈약한 방어장갑 - 특히 갑판장갑 - 이 원인으로 지적되었지만, 실제 원인은 장약 자체의 문제와, 안전 수칙을 따르지 않은 장약 취급 방법에 있었습니다.
#3
후드의 자매함 3척(Howe, Rodney, Anson)도 1916년 하반기에 건조가 시작되었지만, 1917년 초, 소형 함정들의 건조, 수리에 우선권이 부여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일단 완전한 설계안이 나온 후 건조가 재개될 예정이었지만, 1차대전의 종전으로 독일 순양전함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건조가 중단되게 됩니다.
#4
물론 예외도 있어서 영국의 신전함들은 수직 방어장갑을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형태와 의미는 1차대전 당시와는 판이하게 달라서, 좌우 경사나 침수에도 장갑의 하단부가 수선 위로 드러나는 것을 방지하고, 대낙각의 포탄에 어뢰 방어 시스템이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특히 선체 내부에 경사장갑을 설치한 프랑스의 전함들과 미국의 사우스 다코타, 아이오와에서 두드러지는 문제입니다) 영국은 이미 넬슨 급에서 경사장갑을 채택했지만, 이 문제를 깨닫고 다시 수직 장갑 - 대단히 두텁고 방어 면적도 넓은 - 을 채택했던 것입니다.
독일도 수직 방어장갑을 채택했지만, 이는 1차대전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사용한 것에 불과합니다.(약간의 개선은 있었지만)
#5
일본이 일정 시점까지 조약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주력함의 함포구경 제한을 14인치에서 16인치로 복원하고(노스 캐롤라이나 급이 이 조항으로 14인치로 설계가 시작되어서 16인치로 완성되었죠) 그 후엔 기준 배수량 제한 35000톤을 45000톤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입니다. 조약국이 일방적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죠.
[참고자료]
Battleship Design and Development 1905-1945, Norman Friedman, Mayflower Books
Battlecruisers, John Roberts, Naval Institute Press
2004/08/18 17:25
2004/08/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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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RSS 주소 : http://danew.net/warship/rss/comment/17한참 전부터 꾸준히 봐왔는데 이제야 댓글을 남기네요.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얼치기 전함 마니아인 제겐 보물창고와도 같은 블로그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