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발의 포탄을 명중당하고도 격침되지 않은 비스마르크'는 '후드를 일격에 격침'시킨 것과 함께 '비스마르크 신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비스마르크의 최종 전투에서 왜 비스마르크가 쉽게 격침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1. 배를 격침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를 무력화시키려면 바람구멍을 내고, 배를 가라앉히려면 물구멍을 내라'
배는 부력 덕분에 물에 떠 있습니다. 따라서 배를 가라앉히려면 이 부력을 제거해 줘야하죠. 일단 배에 물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배는 부력을 잃고 가라앉기 시작하는데, 배를 산산조각 내거나 꺾어버린다는 과격한 방법 - 탄약고가 폭발하면 가능하겠지요 - 을 제외하면 배에 물을 집어 넣기 위해서는 어뢰나 포/폭탄을 사용해서 선체에 구명을 내어야 합니다.
물론 방어측에서도 수밀격벽을 사용해 침수를 막고 부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에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만큼 충분히 많은/큰 구멍을 내어서 배의 예비부력을 초과하는 다량의 물을 선체 내로 들여 보내야 비로소 배는 가라앉게 되는 것이죠. 혹은 화재나 전술적 이유로 방어측에서 배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면, 방어측은 울며 겨자먹기로 배를 버리거나 자침시키게 됩니다.
후자의 경우를 제외했을때, 문제는 포탄이나 폭탄은 어뢰와 비교해 봤을때 '물구멍'을 내는 방법으로는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뢰가 명중하면 수선 아래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이곳을 통해 대량의 해수가 유입될 수 있지만, 포탄의 경우 홀수선 근방에 명중해야만 비로소 물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배가 종횡으로 기울어지기에 홀수선보다 약간 위에 명중하더라도 배가 구멍이 난 방향으로 기울어졌을때 물이 들어오게 됩니다) 폭탄의 경우 더욱 불리해서 아무리 갑판에 많은 폭탄이 명중해도 부력에는 거의 영향을 줄 수가 없고, 단지 함선 주위에 떨어지는 지근탄이 폭발할때의 수압으로 약간의 - 무시할만한 - 피해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포/폭탄의 비효율성은 실전 기록에서도 쉽게 증명이 됩니다. 2차대전 중 격침된 수많은 전함 중 어뢰의 도움없이 오로지 포/폭격만으로 격침된 전함은 5척 뿐입니다. 그나마도 탄약고 폭발로 격침된 아리조나, 후드, 로마를 제외하고, 5.5톤급 폭탄(톨보이)라는 상식외의 공격으로 격침당한 티르피츠를 제외한다면, 오로지 기리시마만이 순수히 포격만으로 격침된 전함입니다. 그나마 기리시마도 교전이 끝난 후 3시간 후에야 격침되었습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예는 케이프 에스퍼란스 해전 당시 일본의 중순양함 아오바의 사례입니다. 당시 미해군의 완전한 기습 공격을 받은 아오바는 6-8인치의 포탄 40여발을 명중당해 함교 파괴(와 동시에 제독 사망), 2번 포탑 고장, 3번 포탑 파괴 등 상부 구조물은 거의 완전히 무력화가 되었지만, 막상 수선하 피해는 크지 않아서 않아서 무사히 모항으로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뢰의 도움없이 포/폭탄만으로는 적함을 쉽게 격침시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전 이전에 어뢰에 명중당했지만 침수 피해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던 비스마르크가 1시간 정도의 맹포격에도 가라앉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2. 왜 측면 장갑을 관통한 포탄이 적었는가?
'1시간 동안 발사된 700발의 대구경 포탄 중 측면 장갑을 관통한건 4발 뿐'이라는 이야기는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방어력을 선전하는 '신화'입니다만, 이 역시도 실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비스마르크의 최종전투의 주목할만한 특징은 비스마르크가 전투 초장에 간단히 무력화되면서 전함대 전함의 전투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근거리 - 로드니의 경우 2400-9000미터 사이 - 에서 대부분의 사격이 가해졌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같이 짧은 거리에서는 오히려 비스마르크의 측면 장갑을 관통할만한 명중탄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죠.

위 그림은 제임스 카메론의 다큐멘터리에서 캡춰한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수면에서 '되튕기는' 포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워낙 낮은 - 수평에 가까운 - 각도로 포탄을 사격하기에 포탄이 수면에 닿을 경우 마치 물수제비처럼 포탄이 다시 되튕겨서 상부 구조물에 명중하기에 수선 근처(특히 수선 아래)에는 명중탄이 쉽게 나지가 않았습니다.
2. 배가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있기에 왼쪽 측면 장갑이 완전히 수선 아래로 내려가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는 도저히 직격탄이 날 수가 없죠. 혹 명중하더라도 물을 가르고 오기에 관통력이 크게 떨어집니다.
위 그림에서는 우측면은 오히려 평상시보다 더욱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있지만, 실제로는 비스마르크가 이미 상당히 침수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 덴마크 해협 해전에서 수선 아래 명중당한 2발의 포탄, 이후 추격 과정에서 명중당한 3발의 어뢰로 인해 - 홀수가 깊어져 좌우현의 측면장갑 모두가 상당부분이 물에 잠겨버린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악천후로 인해 높은 파도가 일었고, 따라서 수면에서 되튕기거나 물의 저항를 받지 않는 직격탄은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측면장갑이 거의 관통되지 않은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만약 이같은 요인이 없었다면, 320mm의 수직장갑에 불과한 비스마르크의 측면 장갑은 14인치나 16인치 함포에 간단하게 관통되어버리고 말았겠죠.
3. 결론
비스마르크의 최종 전투에서 영국 해군은 약 1시간 반 동안 5.25인치에서 16인치에 이르는 대소 2876발의 포탄을 발사했고, 이 중 300-400발이 명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워낙 많은 포탄이 명중했기에 정확한 통계같은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초의 명중탄이 난 후 10분만에 비스마르크는 전투능력을 거의 상실했고, 30분 후에는 최후의 포탑마저 침묵한채 거대한 해상 고철로 전락했습니다. 상부 구조물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파괴되었고, 배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채 막대한 인명손실과 함께 지휘 계통도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가라앉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언급되며 비스마르크의 '신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명 영국 해군은 포격만으로 비스마르크를 격침시키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함포 사격만으로 대형함을 격침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데다,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근거리에서 교전을 실시했기에 비스마르크의 부력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포탄은 상부 구조물에 명중하거나 145mm의 두께를 지닌 상부 측면 장갑(위 그림에서는 주 측면장갑 위, 장갑이 없는 부분으로 묘사되는 부분)에 명중했을 뿐이었던 것이죠.
물론 심각한 화재와 인명피해, 그리고 이미 회복 불능으로 진행된 침수로 인해 굳이 어뢰 공격을 실시하지 않았거나, 비스마르크가 자침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수시간 내에 비스마르크는 격침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신속하게 비스마르크를 격침시킬수는 없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해답은 '명중률의 손해를 감수하고 중거리에서 사격을 가한다'라는 것입니다. 포탄이 수면에 튕기지 않을만큼 충분한 낙각을 주고 사격을 가했다면 보다 많은 '물구멍'을 뚫을 수 있었을 것이고, 비스마르크의 격침을 앞당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예 순양함의 뇌격을 조기에 실시했었어도 비스마르크를 훨씬 손쉽게 격침시킬 수 있었겠죠.
비스마르크가 쉽게 격침되지 않은 것은 비스마르크에게 무언가 특출난 장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단지 영국 해군의 적절하지 못한 공격 방법 탓에 시간을 많이 끌었을 뿐이죠. 영국 해군의 DNC(Director of Naval Construction)였던 Charles Lillicrap는 1940년대에 이미 이 전투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We could have continued firing at that close range for a week and would never have sunk the ship. To sink a ship one must let the water in!"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신화'의 실체를 잘 짚어낸 평가죠.
[참고자료]
Battleships: Axis and Neutral Battleships in World War II, William H. Garzke, Robert O. Dulin, Naval Institute Press
Nelson to Vanguard: Warship Design 1923-1945, D. K. Brown, Naval Institut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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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를 격침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를 무력화시키려면 바람구멍을 내고, 배를 가라앉히려면 물구멍을 내라'
배는 부력 덕분에 물에 떠 있습니다. 따라서 배를 가라앉히려면 이 부력을 제거해 줘야하죠. 일단 배에 물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배는 부력을 잃고 가라앉기 시작하는데, 배를 산산조각 내거나 꺾어버린다는 과격한 방법 - 탄약고가 폭발하면 가능하겠지요 - 을 제외하면 배에 물을 집어 넣기 위해서는 어뢰나 포/폭탄을 사용해서 선체에 구명을 내어야 합니다.
물론 방어측에서도 수밀격벽을 사용해 침수를 막고 부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에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만큼 충분히 많은/큰 구멍을 내어서 배의 예비부력을 초과하는 다량의 물을 선체 내로 들여 보내야 비로소 배는 가라앉게 되는 것이죠. 혹은 화재나 전술적 이유로 방어측에서 배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면, 방어측은 울며 겨자먹기로 배를 버리거나 자침시키게 됩니다.
후자의 경우를 제외했을때, 문제는 포탄이나 폭탄은 어뢰와 비교해 봤을때 '물구멍'을 내는 방법으로는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어뢰가 명중하면 수선 아래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이곳을 통해 대량의 해수가 유입될 수 있지만, 포탄의 경우 홀수선 근방에 명중해야만 비로소 물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배가 종횡으로 기울어지기에 홀수선보다 약간 위에 명중하더라도 배가 구멍이 난 방향으로 기울어졌을때 물이 들어오게 됩니다) 폭탄의 경우 더욱 불리해서 아무리 갑판에 많은 폭탄이 명중해도 부력에는 거의 영향을 줄 수가 없고, 단지 함선 주위에 떨어지는 지근탄이 폭발할때의 수압으로 약간의 - 무시할만한 - 피해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포/폭탄의 비효율성은 실전 기록에서도 쉽게 증명이 됩니다. 2차대전 중 격침된 수많은 전함 중 어뢰의 도움없이 오로지 포/폭격만으로 격침된 전함은 5척 뿐입니다. 그나마도 탄약고 폭발로 격침된 아리조나, 후드, 로마를 제외하고, 5.5톤급 폭탄(톨보이)라는 상식외의 공격으로 격침당한 티르피츠를 제외한다면, 오로지 기리시마만이 순수히 포격만으로 격침된 전함입니다. 그나마 기리시마도 교전이 끝난 후 3시간 후에야 격침되었습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예는 케이프 에스퍼란스 해전 당시 일본의 중순양함 아오바의 사례입니다. 당시 미해군의 완전한 기습 공격을 받은 아오바는 6-8인치의 포탄 40여발을 명중당해 함교 파괴(와 동시에 제독 사망), 2번 포탑 고장, 3번 포탑 파괴 등 상부 구조물은 거의 완전히 무력화가 되었지만, 막상 수선하 피해는 크지 않아서 않아서 무사히 모항으로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뢰의 도움없이 포/폭탄만으로는 적함을 쉽게 격침시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전 이전에 어뢰에 명중당했지만 침수 피해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던 비스마르크가 1시간 정도의 맹포격에도 가라앉지 않았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2. 왜 측면 장갑을 관통한 포탄이 적었는가?
'1시간 동안 발사된 700발의 대구경 포탄 중 측면 장갑을 관통한건 4발 뿐'이라는 이야기는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방어력을 선전하는 '신화'입니다만, 이 역시도 실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비스마르크의 최종전투의 주목할만한 특징은 비스마르크가 전투 초장에 간단히 무력화되면서 전함대 전함의 전투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근거리 - 로드니의 경우 2400-9000미터 사이 - 에서 대부분의 사격이 가해졌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같이 짧은 거리에서는 오히려 비스마르크의 측면 장갑을 관통할만한 명중탄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죠.
위 그림은 제임스 카메론의 다큐멘터리에서 캡춰한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수면에서 '되튕기는' 포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워낙 낮은 - 수평에 가까운 - 각도로 포탄을 사격하기에 포탄이 수면에 닿을 경우 마치 물수제비처럼 포탄이 다시 되튕겨서 상부 구조물에 명중하기에 수선 근처(특히 수선 아래)에는 명중탄이 쉽게 나지가 않았습니다.
2. 배가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있기에 왼쪽 측면 장갑이 완전히 수선 아래로 내려가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는 도저히 직격탄이 날 수가 없죠. 혹 명중하더라도 물을 가르고 오기에 관통력이 크게 떨어집니다.
위 그림에서는 우측면은 오히려 평상시보다 더욱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있지만, 실제로는 비스마르크가 이미 상당히 침수되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 덴마크 해협 해전에서 수선 아래 명중당한 2발의 포탄, 이후 추격 과정에서 명중당한 3발의 어뢰로 인해 - 홀수가 깊어져 좌우현의 측면장갑 모두가 상당부분이 물에 잠겨버린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악천후로 인해 높은 파도가 일었고, 따라서 수면에서 되튕기거나 물의 저항를 받지 않는 직격탄은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측면장갑이 거의 관통되지 않은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만약 이같은 요인이 없었다면, 320mm의 수직장갑에 불과한 비스마르크의 측면 장갑은 14인치나 16인치 함포에 간단하게 관통되어버리고 말았겠죠.
3. 결론
비스마르크의 최종 전투에서 영국 해군은 약 1시간 반 동안 5.25인치에서 16인치에 이르는 대소 2876발의 포탄을 발사했고, 이 중 300-400발이 명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워낙 많은 포탄이 명중했기에 정확한 통계같은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초의 명중탄이 난 후 10분만에 비스마르크는 전투능력을 거의 상실했고, 30분 후에는 최후의 포탑마저 침묵한채 거대한 해상 고철로 전락했습니다. 상부 구조물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파괴되었고, 배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채 막대한 인명손실과 함께 지휘 계통도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가라앉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언급되며 비스마르크의 '신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분명 영국 해군은 포격만으로 비스마르크를 격침시키는데는 실패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함포 사격만으로 대형함을 격침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데다,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근거리에서 교전을 실시했기에 비스마르크의 부력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포탄은 상부 구조물에 명중하거나 145mm의 두께를 지닌 상부 측면 장갑(위 그림에서는 주 측면장갑 위, 장갑이 없는 부분으로 묘사되는 부분)에 명중했을 뿐이었던 것이죠.
물론 심각한 화재와 인명피해, 그리고 이미 회복 불능으로 진행된 침수로 인해 굳이 어뢰 공격을 실시하지 않았거나, 비스마르크가 자침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수시간 내에 비스마르크는 격침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신속하게 비스마르크를 격침시킬수는 없었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해답은 '명중률의 손해를 감수하고 중거리에서 사격을 가한다'라는 것입니다. 포탄이 수면에 튕기지 않을만큼 충분한 낙각을 주고 사격을 가했다면 보다 많은 '물구멍'을 뚫을 수 있었을 것이고, 비스마르크의 격침을 앞당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예 순양함의 뇌격을 조기에 실시했었어도 비스마르크를 훨씬 손쉽게 격침시킬 수 있었겠죠.
비스마르크가 쉽게 격침되지 않은 것은 비스마르크에게 무언가 특출난 장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단지 영국 해군의 적절하지 못한 공격 방법 탓에 시간을 많이 끌었을 뿐이죠. 영국 해군의 DNC(Director of Naval Construction)였던 Charles Lillicrap는 1940년대에 이미 이 전투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We could have continued firing at that close range for a week and would never have sunk the ship. To sink a ship one must let the water in!"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신화'의 실체를 잘 짚어낸 평가죠.
[참고자료]
Battleships: Axis and Neutral Battleships in World War II, William H. Garzke, Robert O. Dulin, Naval Institute Press
Nelson to Vanguard: Warship Design 1923-1945, D. K. Brown, Naval Institute Press
2004/08/25 21:20
2004/08/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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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보셨습니다. 원문을 확인해 보니 1940's 였는데, 이를 '1940년'으로 잘못본 것이더군요.(이런 멍청한 실수를 -_-;) '1940년대'로 수정했습니다. 방문과 지적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