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시작되면서 판돈이 커지다
포클랜드 해전(1914년 12월)에서 장갑 순양함 켄트는 함포 갑판에서 발생한 화재가 양탄기를 따라내려가 주 장약고 바로 밖에 쌓여있던 장약에 인화하면서 거의 침몰할 뻔 했다. 장약들을 즉시 침수시킨 승무원의 대응 때문에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이 전훈을 바탕으로 1915년 2월, 해군성은 함대에 '포 근처에 모아놓은 장약이 심각한 화재를 일이킬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 명령은 본국함대의 대부분의 함정에서 무시되었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여전히 '발사 속도를 떨어뜨리는 것 보다는 화재의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결과 1916년까지도 순양전함 부대에서는 최소한 14개의 장약을 개개의 대어뢰정 속사포 근처에 준비해 두는 것이 표준 관행이었다. 실제 숫자는 함정마다 달라서, 순양전함 타이거의 경우 1916년 5월 31일, 교전에 들어갈때 각 포마다 20발 이상의 탄약을 준비한 상태였다. 그리고 앞으로 볼 것처럼 주포탑 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1915년 초, 영국 해군은 더 빨리 사격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포클랜드 해전과 1915년 1월에 벌어진 도거뱅크에서의 순양전함 전투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영국 해군 장교들이 주포의 발사 속도가 정확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함대 총사령관인 젤리코 대장은 전쟁이 시작될 당시 내려진 최대한 탄약을 절약하라는 해군성의 지시가 이 해전에서 영국 함정들이 최대 발사 속도로 사격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해군성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 지시를 철회하고 포원들이 더 빨리 사격하는 것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젤리코는 보고서에서 '빠르게 사격하는 배보다 느리게 사격하는 배에 사격을 가하는 것이 더 쉽다. 느리게 사격하는 배 상대로는 물보라나 소음, 심리적 불안 등의 방해 요소가 덜할 뿐만 아니라, 적함이 장약연기에 덜 가려지므로 탄착을 관측하기도 더 쉽다... ...우리쪽의 사격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함대 교전에서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젤리코는 해군성에 설명하기를 "내 생각으로는, 지금 시점에서 이 명령을 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915년 3월부터 젤리코는 영국의 "(주력)함은 적함에 사격이 협차*1 된 것이 확실한 상태에서 최대한의 속사를 가해야 한다." 고 밝혔다. 이런 전술은 그가 경고했듯이 "의심할 여지없이 탄약의 엄청난 소모를 가져올 것"이지만,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젤리코가 선임 포술 장교인 프레드릭 드레이어 대령과 함께 준비한 그랜드 플릿 명령서 개정판에 의하면, 1400파운드의 포탄을 발사하는 13.5인치 주포로 무장한 함정의 표준 발사 속도는 40초에 1회의 일제 사격이었다. "속사"는 일제 사격간의 간격이 30초나 그 이하를 의미했다. 전쟁 전에 실시된 한 사격 훈련에서, HMS 오라이언은 7회의 연속 일제 사격을 평균 간격 24.3초만에 실시하는 기록을 세웠다. 13.5인치 포탑의 양탄기는 빠른 장전을 실시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되었다. 850파운드의 포탄을 발사하는 12인치 주포로 무장한 함정은 더 빨리 사격할 수 있었다. - 놀랍게도 매 20초 이내에 한번씩 일제 사격이 가능했다.
동시에 함대에 배포된 이 주제에 대한 두번째 보고서에서 젤리코는 "속사는 적함을 신속하게 무력화시키고, 동시에 적의 사격 명중률을 감소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주장의 기초 근거는 "어떤 거리에서건, 교전은 명중률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근-중거리에서는 사격하자마자 명중탄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고, 사격 속도가 느린 쪽은 처음 2분 정도만에 상대에게 압도당해서 회복 불능이 될 것이다"는 것이었다. 세번째 문서는 1915년 3월 20일자의 그랜드 플릿 명령서의 추가조항으로, 젤리코는 함대의 포술 장교에게 보다 상세한 지시를 하고 있다. "시정이 1만야드 이하인 경우에는, 교전 초장부터 우세를 점하기 위해 반드시 속사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속사'를 실시하기 위해 함정은 '속사 일제 사격'을 실시하던지, 각 포탑의 '독립 사격'을 허용할 수 있었다. '속사 일제 사격'이라는 용어는 '첫번째 사격 후 조준 수정을 하기 전에 다음 사격을 실시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달리 말해서, 함정은 첫번째 사격이 착탄하기 전에 두번째 사격을 실시해야 했다. 이 비망록은 명확한 용어로 지정하기를 "분명히 이해되어야 할 것은,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격통제를 위한 데이터*2를 얻기 위해 사격이 지체되어서는 안된다. 사격 지연으로 인해 아주 조금이라도 불리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측거의로 거리를 측정하기 위한 지연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모든 명령들은 1916년 5월 31일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1 straddle
*2 plot
환장실의 단면도

양탄통 가운데의 보조 장약/포탄 양탄기, 장전상자와 주장약/포탄상자 사이에 포탄과 장약이 대기하는 대기선반 등을 볼 수 있다.
라이온의 Q포탑 부근의 단면도

배 전체의 구조에서 취급실과 탄약고가 어떤식으로 분리되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 (원래 그림에서 우측은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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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해전(1914년 12월)에서 장갑 순양함 켄트는 함포 갑판에서 발생한 화재가 양탄기를 따라내려가 주 장약고 바로 밖에 쌓여있던 장약에 인화하면서 거의 침몰할 뻔 했다. 장약들을 즉시 침수시킨 승무원의 대응 때문에 참사는 피할 수 있었다. 이 전훈을 바탕으로 1915년 2월, 해군성은 함대에 '포 근처에 모아놓은 장약이 심각한 화재를 일이킬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 명령은 본국함대의 대부분의 함정에서 무시되었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여전히 '발사 속도를 떨어뜨리는 것 보다는 화재의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결과 1916년까지도 순양전함 부대에서는 최소한 14개의 장약을 개개의 대어뢰정 속사포 근처에 준비해 두는 것이 표준 관행이었다. 실제 숫자는 함정마다 달라서, 순양전함 타이거의 경우 1916년 5월 31일, 교전에 들어갈때 각 포마다 20발 이상의 탄약을 준비한 상태였다. 그리고 앞으로 볼 것처럼 주포탑 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1915년 초, 영국 해군은 더 빨리 사격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포클랜드 해전과 1915년 1월에 벌어진 도거뱅크에서의 순양전함 전투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영국 해군 장교들이 주포의 발사 속도가 정확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함대 총사령관인 젤리코 대장은 전쟁이 시작될 당시 내려진 최대한 탄약을 절약하라는 해군성의 지시가 이 해전에서 영국 함정들이 최대 발사 속도로 사격하는 것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해군성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 지시를 철회하고 포원들이 더 빨리 사격하는 것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젤리코는 보고서에서 '빠르게 사격하는 배보다 느리게 사격하는 배에 사격을 가하는 것이 더 쉽다. 느리게 사격하는 배 상대로는 물보라나 소음, 심리적 불안 등의 방해 요소가 덜할 뿐만 아니라, 적함이 장약연기에 덜 가려지므로 탄착을 관측하기도 더 쉽다... ...우리쪽의 사격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함대 교전에서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젤리코는 해군성에 설명하기를 "내 생각으로는, 지금 시점에서 이 명령을 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915년 3월부터 젤리코는 영국의 "(주력)함은 적함에 사격이 협차*1 된 것이 확실한 상태에서 최대한의 속사를 가해야 한다." 고 밝혔다. 이런 전술은 그가 경고했듯이 "의심할 여지없이 탄약의 엄청난 소모를 가져올 것"이지만,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젤리코가 선임 포술 장교인 프레드릭 드레이어 대령과 함께 준비한 그랜드 플릿 명령서 개정판에 의하면, 1400파운드의 포탄을 발사하는 13.5인치 주포로 무장한 함정의 표준 발사 속도는 40초에 1회의 일제 사격이었다. "속사"는 일제 사격간의 간격이 30초나 그 이하를 의미했다. 전쟁 전에 실시된 한 사격 훈련에서, HMS 오라이언은 7회의 연속 일제 사격을 평균 간격 24.3초만에 실시하는 기록을 세웠다. 13.5인치 포탑의 양탄기는 빠른 장전을 실시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되었다. 850파운드의 포탄을 발사하는 12인치 주포로 무장한 함정은 더 빨리 사격할 수 있었다. - 놀랍게도 매 20초 이내에 한번씩 일제 사격이 가능했다.
동시에 함대에 배포된 이 주제에 대한 두번째 보고서에서 젤리코는 "속사는 적함을 신속하게 무력화시키고, 동시에 적의 사격 명중률을 감소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주장의 기초 근거는 "어떤 거리에서건, 교전은 명중률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근-중거리에서는 사격하자마자 명중탄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고, 사격 속도가 느린 쪽은 처음 2분 정도만에 상대에게 압도당해서 회복 불능이 될 것이다"는 것이었다. 세번째 문서는 1915년 3월 20일자의 그랜드 플릿 명령서의 추가조항으로, 젤리코는 함대의 포술 장교에게 보다 상세한 지시를 하고 있다. "시정이 1만야드 이하인 경우에는, 교전 초장부터 우세를 점하기 위해 반드시 속사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속사'를 실시하기 위해 함정은 '속사 일제 사격'을 실시하던지, 각 포탑의 '독립 사격'을 허용할 수 있었다. '속사 일제 사격'이라는 용어는 '첫번째 사격 후 조준 수정을 하기 전에 다음 사격을 실시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달리 말해서, 함정은 첫번째 사격이 착탄하기 전에 두번째 사격을 실시해야 했다. 이 비망록은 명확한 용어로 지정하기를 "분명히 이해되어야 할 것은,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격통제를 위한 데이터*2를 얻기 위해 사격이 지체되어서는 안된다. 사격 지연으로 인해 아주 조금이라도 불리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 측거의로 거리를 측정하기 위한 지연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모든 명령들은 1916년 5월 31일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1 straddle
*2 plot
환장실의 단면도

양탄통 가운데의 보조 장약/포탄 양탄기, 장전상자와 주장약/포탄상자 사이에 포탄과 장약이 대기하는 대기선반 등을 볼 수 있다.
라이온의 Q포탑 부근의 단면도

배 전체의 구조에서 취급실과 탄약고가 어떤식으로 분리되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 (원래 그림에서 우측은 잘라냈다)
2005/01/29 01:34
2005/01/29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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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RSS 주소 : http://danew.net/warship/rss/comment/49......이렇게 열심이었는데 왜 판정-_-패 했을까요. 역시 전투에선 변수가^^;
유틀란트 해전이 과연 '판정패'일까요? 전 영국군의 분명한 승리라고 보는데 말입니다.
5월 31일 밤, 전투력을 거의 상실하고 모항으로 줄행랑을 친 쪽과, 전투력을 유지하고 다음날 아침, 재차 전투에 돌입할 계획이었던 쪽. 결론은 분명합니다.
단순히 사상자 숫자로만 승패를 따진다면 우리의 상식과는 승패가 바뀔 전쟁도 꽤 많습니다. 아마 2차대전 당시의 동부전선은 독일의 압도적인 승리로 평가할 수 있겠죠.
물론 저도 영국의 승리라고 개인적으론 (많이)생각하지만 주력함의 전투손실 비율에서는 객관적으로 그리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셨겠지만 인명록의 간단한 설명에도 영국의 압도적인 제해권에 관해선 저도 당연 영국의 전략적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주력함의 손실 비율은 승패를 따지는 기준이 될 수 없지요. ^^
// 다시 보니 손실비율이 영국측이 더 높았다는 의미로 '판정패'라는 용어를 사용하신거군요. 격침만이 손실비율로 계산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확실히 격침 숫자가 더 많긴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