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무 님의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게시물들을 보니 레이더가 원거리 사격통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낮게 평가하시는 것 같은데, 제 의견은 좀 다릅니다.
전함에서의 레이더 전탐사격 - B군님전함의 명중률과 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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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전함의 사격통제시스템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단순화시키면, 사격에 필요한 외부 데이터를 수집해 / 사격통제계산기로 처리해 / 각 포탑에 사격제원을 분배하는 시스템이죠. 이 단계 하나하나의 정확도가 시스템 전체의 정확도를 결정짓게 됩니다. 수집된 외부 데이터가 부정확하면 이후 아무리 잘 처리-분배해도 엉뚱한 곳으로 포탄이 날아갈거고, 처리과정이 부정확하거나 느려도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아무리 사격제원을 잘 뽑아도 포탑에서 사격제원을 제때 확인할 수 없으면 이전 과정도 무의미해지고요.
예를 들어, 쓰시마 해전 당시 일본 해군은 측거의를 사용해 정확한 거리 데이터를 수집, 각 포탑에 전달하는 시스템을 시도했지만, 격렬한 전투의 와중에서 데이터의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1차대전 당시 영국해군의 사격통제계산기인 드레이어 테이블은 처리능력이 제한되어 중앙집중식 사격통제시스템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2차대전 무렵이 되면 데이터의 처리 / 분배 시스템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성숙단계에 도달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적함과의 거리 데이터를 수집하는 측거의는 여전히 제한이 많은 장비였습니다.
사격에 필요한 외부 데이터로는 배군님이 지적하신 대로 자함의 침로 / 속도 / 요동, 적함의 거리 / 침로 / 방위 / 속도, 대기 상태(온도, 습도, 풍향, 풍속 등등), 포의 상태(탄종, 화약온도, 포의 마모상태 등) 등이 있겠는데, 이 중 가장 측정이 까다로운게 적함과 관련된 데이터입니다. 자함의 움직임과 포의 상태와 관련되는 데이타는 당연히 알 수 있고, 대기상태도 역시 자함에서 측정이 가능한데, 적함의 거리 / 침로 / 방위 / 속도는 측정이 쉽지 않죠. 이 중 침로와 속도는 거리와 방위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해서 얻게 되므로(물론 근거리에서는 형태나 함수파의 형태를 보고도 판단이 가능합니다만) 결국은 거리와 방위가 문제가 됩니다. 한데 방위는 또 측거의가 몇도 방향을 보고 있는지 간단히 알 수 있으므로 결국 거리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측정이 힘든 데이터가 되는 것입니다. 왜 측'거'의, 'Range'Finder인지, 그리고 착탄수정시 원탄/근탄을 확인하는게 강조되는지, 왜 측거의의 기선장을 늘이는지를 생각해 보면, 정확한 거리 데이터의 획득이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힘든 문제인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그런데 측거의는 기본적으로 양 팔에서 들어오는 빛의 시차를 측정해서 거리를 측정하는 장비입니다. 결국 이 시차측정의 정밀도가 문제가 되는데, 아무래도 광학계를 기계적으로 움직여 시차를 측정하는 방식은 기계적 정밀도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측거의의 측정정밀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대기/일광상태, 조작인원의 능력, 표적의 형태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있고, 다들 거리가 멀어질수록 오차를 크게 만드는 요인들이 됩니다. 물론 거리 측정의 정밀도가 떨어져도 착탄지점을 보고 사격제원을 수정해 나가면 결국 협차(straddle)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만, 아무튼 사격에 필요한 외부데이터 중 가장 중요한 거리 측정은, 원거리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데 레이더는 측거의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거리를 측정하고, 그 정밀도가 높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파장에 따라, 그리고 회로 및 전시방법에 따라 거리측정의 정밀도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어쨌건 전파 펄스를 발사해 돌아오는 시간을 전자적으로 측정해(기계적으로 측정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전시하기 때문에 기계적이고 외부 기상 및 조작인원의 능력에 크게 의존하는 측거의에 비하면 거리 측정의 정밀도가 높다는 것이죠.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리 증가 및 외부 기상에 따른 정밀도 감소가 측거의에 비해서 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레이더도 기상 영향은 받습니다만 측거의에 비할바는 아니죠) 한편, 근거리로 올수록 정밀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측거의와는 달리 전파가 오고간 시간차를 재는 방식인 레이더에서는 근거리라고 해서 더 정밀하게 거리를 측정할 여지는 작은 편입니다.
측거의가 수행하는 다른 역할, 즉 방위각 측정 및 탄착 관측의 측면을 살펴보자면, 일단 방위각 측정 면에서는 레이더는 불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전파 빔을 아주 가늘게 해서 각정밀도를 높이는게 쉽지 않은데다, 결국 레이더 안테나가 돌아가는 것도 기계적인 방법이니 만큼, 더 우수한 정밀도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건 아니지만, 어쨌건 거리측정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구조적인 우수함은 없습니다. 탄착관측의 경우, 잡음 속에서 탄착을 관측할 정도의 기기 정밀도 및 전시방법이 존재한다면 원거리에서도 원탄/근탄의 확인이 용이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사격통제시스템 전체의 관점으로 돌아가죠. 일단 레이더가 기존의 사격통제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레이더가 대체하는 것은 측거의가 수행하는 적함과 관련된 데이터 수집 영역이죠. 특히 측거의의 능력이 떨어지는 악시정 상황이나 원거리에서 정확한 거리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고, 원거리에서 착탄관측이 용이하며, 방위각 측정도(뛰어나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가능하다는 것이 레이더가 측거의에 비해 우수한 점입니다. 달리 말하면, 좋은 기상조건 하에서, 그리고 근거리에서는 측거의가 하등 불리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죠. 일단 이렇게 레이더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처리 / 분배하는 것은 측거의를 사용하는 경우와 동일합니다. 결국 '레이더를 사용한 사격통제'의 장점은 '레이더가 특정 영역에서 측거의보다 우수하기 때문에' 발휘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한편, 레이더를 사용한 사격통제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레이더가 사격통제시스템에 어느 정도로 통합되었는가의 문제입니다. 제아무리 레이더가 우수해도 레이더에서 수집한 데이터가 제때 사격통제계산기로 전달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게 레이더가 갓 소개되었을 당시 미해군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레이더 전시방법이 개선되고, CIC를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차츰 해결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레이더를 사용한 사격통제시스템은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 아니라, 기존의 사격통제시스템에서 측거의가 수행하던 역할을 레이더가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원거리 사격이나 악시정 상황에서 측거의는 거리측정의 정밀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반면, 레이더는 정밀도의 감소가 덜하므로 기존 측거의에 비해 더 정확한 거리 데이터를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데이터의 처리 / 분배 시스템이 동일한 상태에서 더 정확한 데이터의 입력은 더 정확한 사격을 가능토록 해 주므로 레이더를 사용한 사격통제시스템은 악시정에서의 근거리 사격 뿐만 아니라 원거리 사격에서도 우수한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자료
http://www.history.navy.mil/library/onl ··· contents
http://www.warbirds.jp/ansq/4/D2000402.html
p.s.2. Garzke&Dulin의 U.S. Battleships 1935-1992의 뉴저지 편에서도 1944년 2월 17일 트룩섬 습격 당시 탈출하는 구축함 노와키에 대해 'Extreme Range'에서 수차례의 협차를 기록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Extreme Range'가 어느정도인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예전 다른 자료를 본 기억으로는 30km 안밖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구축함'을 상대로 30km 밖에서 협차를 한다는게 측거의를 사용해서는 쉬운 일이 아닐텐데 말입니다.
p.s.3. Combined Fleet에서 이 전투에 관한 내용을 읽었습니다. 사격 개시는 35000야드, 추격 속도는 32.5노트, 초탄에 협차를 했다는군요. 노와키가 태양 방향으로 도주하며 측거의로는 사격이 불가능해 38000야드 부터는 레이더에만 의존했고, 39000야드에서 스프루언스의 지시로 추격을 중지했답니다. 명중탄은 없었지만, 아무튼 '도주하는 구축함'을 상대로 35000야드에서 협차하고, 측거의로는 사격이 불가능 한 상황에서도 사격이 가능했다는 점은 분명한 레이더의 장점이지요.
p.s.4. 이 내용에 대한 토론은 [여기]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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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RSS 주소 : http://danew.net/warship/rss/comment/72차대전간 미국의 전함은 기계화, 전기화를 많이 이루었습니다. 계산에 진공관 회로도 사용했다고 하고요.
이게 전함 주포 사통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대공포까지 전기화됐다니까요.
어느 글에서, 이런 미군이 이랬는데 일본군은 주판과 계산자를 썼다고..
(일본군이 이런 경향을 보인 게 어디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요)
그러니, 전함의 함포 사격간격이 길다고는 해도 미군쪽이 더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